top of page
더 밝은 어둠 속으로
철새가 지나간 자리에서 시작된 순례기

하라은(나은)

철새는 생존을 위해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따라 이동한다. 철새가 어떻게 대열을 유지하며 서식지를 옮겨가고, 세계를 횡단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모종의 믿음을 바탕으로 움직인다고 추측할 뿐이다. 태곳적 인간도 이런 믿음에 기반하여 자연과 소통해 왔을 것이다. 인간은 가뭄이 오면 기우제를 지냈다. 별자리나 구름을 보고 미래를 점치기도 했다. 선대인은 정보가 불충분한 상황에서도 우주의 징후에 감각을 집중했다. 반면 현대인은 늘 분산된 마음으로 살아간다. 특정한 목적에 따라 가공된 정보들이 메시지의 형태로 범람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수신하기만 해도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그것들은 외형적으로 완성된 전언처럼 보이나, 진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과잉된 정보들이 디지털을 종횡하는 가운데 우리는 무엇도 선뜻 믿지 못한다.

 

안무가이자 퍼포머인 김수화는 기술 매체와 몸이 관계 맺거나, 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을 다원 예술 작업으로 구현해 왔다. 김수화는 작업에 디지털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그에 비해 기술을 대하는 태도는 관조적이다. 그는 과학과 기술을 낭만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는 디지털 매체 신호에 신체가 반응하는 양상을 중립적으로 제시한다. 김수화의 몸짓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비인간-동물들을 연상하게 한다. 김수화는 환경을 통제하거나, 자신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작업 방식을 지양한다. 그는 자신의 몸을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시공간 속에 그저 놓아둔다. 그의 작업에서, 와이파이 등의 기술 장치 역시 ‘우연’을 감각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문화비축기지 T1 파빌리온(Glass Pavilion)에서 올라간 그의 근작 〈애프터바디〉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자연적 믿음을 찾아 나서는, 무모한 순례기이다. 공연의 제목 ‘애프터바디(후방동체)’는 비행기의 방향과 균형을 제어하는 장치다. 김수화의 작업에서, 몸은 우리가 갈 곳을 안내하는 중요한 도구다. 동시에 몸 이후의 몸(後體:후체)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점, 원점이기도 하다. 관객은 그의 순례에 조용히 동참한다. 

순례의 시작점은 T1 입구 복도다. 복도 외벽에 설치된 스크린 위로 김수화의 지난 작업 〈행운의 편지(Letter of Luck)〉 영상이 재생된다. 〈행운의 편지〉는 PC통신 시절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던 ‘행운의 편지’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상이다. 화자는 관객들에게 실체도 없으며, 규명하기도 어려운 개념인 ‘행운’을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 그렇지만 행운은 예측할 수 없으며, 따라잡을 수 없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행운의 편지를 쓰는 행위’는 예측 불가능한 행운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이 행위는 실패 시 불운이 찾아올 수 있다는 불안을 내포한다. 〈행운의 편지〉는 이렇게 정보를 다루는 현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현재를 자각하게 한다. 따라서 이 영상은 공연 전체의 매뉴얼 역할을 한다. 공연의 시작점이 ‘영상’ 매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상은 우리가 가장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신호들의 집합이다. 긴장을 풀고 영상을 응시하는 사이 영상의 ‘메시지’는 우리가 앞으로 탐험할 장소가 ‘메시지 너머’임을 암시한다.

영상이 종료된 후, 관객(순례자)들은 어두운 방 안으로 이동한다. ‘2막’은 T1 복도와 파빌리온을 이어주는 작은 통로에서 진행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물체(센서)를 든 김수화가 등장하고 옴 챈트(Aum chanting)를 시작한다. 옴 챈트는 일정한 파장을 가진 소리를 일정 시간 동안 지속하면서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신체 리듬을 동기화하는 역할을 한다. 속세의 먼지를 털어내는 정화 의식인 셈이다. 챈트 소리는 비행기 제트엔진이 돌아가는 소리를 연상시킨다. 이 의식은 행위자와 관객을 모두 준비된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기에, 비행 전 정비 작업과도 기능상 일치한다. 챈트 도중, 김수화는 바닥에 누웠다가 천천히 일어난다.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 같다. 김수화는 바닥에 완전히 엎드렸다가, 다시 바닥을 누르고 몸의 중심을 옮긴다. 이후 그는 기지개하듯 관절을 하나하나 돌리다 완전히 일어선다. 이 장면에서 김수화의 몸짓은 비행 직전의 새를 닮았다.

김수화는 센서를 등불처럼 들고 어둡고 긴 통로를 지난다. 김수화 작업의 핵심 장치라고 할 수 있는 이 센서는 와이파이 신호의 세기 변화를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신호의 세기가 변할 때마다 그 값에 코딩된 음성이 출력된다. 음성은 ‘an apple’ 등의 간단한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관객들은 센서에서 흘러나오는 음성, 의미가 묘연한 단어 혹은 문장, 그리고 빛에 인도된다. 빛은 어둠 속에서 길을 열어주고, 방향 감각을 일깨워준다. 김수화와 관객들은 파빌리온으로 향한다. 파빌리온은 문화비축기지에 있던 탱크를 해체한 후 남은 콘크리트 벽을 이용하여 유리 구조물을 이어 붙인 건축물이다. 유리 구조물 바깥으로 매봉산 암벽이 보인다. 자연과 문명이 혼재된 인상을 주는 이 장소에서, 철새의 이동 경로를 설명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강원도 강릉시를 넘어, 북한과 중국까지 날아간 철새들. 철새는 인간과 달리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철새는 (원초적) 계시를 따름으로써 인간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고, 만방을 조망할 수 있다. 

순례자들이 철새에 관한 ‘복음’을 듣는 동안, 김수화는 주술적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김수화는 본인 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새와 유사한 동작을 선보인다. 그는 몸을 뒤집어 ‘브리지’ 자세를 취한 뒤, 두 팔과 두 다리로 기어간다. 그는 인간을 거쳐 들짐승, 날짐승으로 변신하는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김수화는 점과 점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고, 점프한다. 그가 지면과 떨어지는 시간이 점차 늘어간다. 이 와중에 센서는 김수화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코딩된 음성을 출력한다. 김수화는 출력되는 질문에 매 순간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움직임이 변화할 때마다 반응의 양상도 변한다. ‘대화’의 의미는 점점 무색해지고, 예배당의 방언처럼 말의 ‘에너지’만이 남는다. 김수화는 비-인간으로서 하늘과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 퍼포먼스는 사제가 성물을 쥐고 행하는 종교의식처럼 보인다. 요가, 애니멀 플로우 등의 원형인 이 ‘흉내 내기’는 비-인간을 모방하며 초월적인 감각을 경험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요가 수련에서 차크라를 개방하기 위해 취하는 동작(낙타 자세, 연꽃 자세 등) 이름이 자연과 동식물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물론 김수화는 새가 아니다. 대화처럼 보이는 센서와의 상호작용 역시, 미리 코딩된 문장을 출력한 결과에 불과하다. 배치된 문장은 회화의 물감, 조각상의 대리석처럼 그저 질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의미를 생성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관객은 각자가 그 의미를 자율적으로 생성하면서 유희를 경험하는데 이는 마치 ‘그렇다 치고’ 시작하는 어린아이의 소꿉놀이 같다. 믿음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제의에 참여하면서, 관객은 어린 시절 혹은 문명 이전의 기억으로 빠져든다. 일련의 놀이-행위는 우리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이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과 실제로 통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철새는 행동하기 전에 믿는다. 그래서 주저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많은 것을 소유하고, 많은 정보를 통제할수록 미지에 대한 불안은 커져만 간다. 종교에서 말하는 불신지옥은 어쩌면 이런 자가당착의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소통을 향한 원시적 열정이 남아 있다. 우리는 언제든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다. 새가 되어 날아가기를 꿈꿀 수 있다. 이 열정은 일종의 노스탤지어로,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코딩된 ‘음성’일지도 모른다. 나뭇잎이나 흙, 돌멩이로 놀던 시절의 기억일 수도, 구름의 모양이나 달의 크기만으로 신의 뜻을 예측하던 시절의 집단 기억일 수도 있다. 김수화는 우리 의식 깊이 자리 잡은 아득한 신앙을 불러온다. 퍼포먼스 말미에 김수화는 출입구를 향해 달려 나간다. 빠르게 달리는 김수화는 국경 너머로 훌쩍 날아가는 새처럼 보인다. 

여러 가지 기호들이 소거된 상태만이 우리의 순례를 가능하게 한다. 어둠은 빛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고요와 어둠, 침묵으로 가득한 상태. 〈애프터바디〉를 보며,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 통로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빛을 발견하고 싶다.

하라은(나은)

2024년 12월 더줌아트센터 연극 〈신의 바늘〉 프로젝트 매니저 · 접근성 매니저

2024년 5월 국립아시문화전당 아동청소년극 〈슈레야를 찾아서〉 드라마터그

2024년 3월 연희예술극장 연극 〈안타 오이디푸스: hit or run〉 홍보

2024년 1월 스페이스 ink 영안 & 주보람 2인전 〈One Before Zero〉

bottom of page